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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의 하마성경 정은수 집사 연구 보고서

by 더좋은소망 2023. 12. 15.


하마성경 정은수 집사에 대한 연구보고서

I. 연구 경위

2022년 11월 30일 군산노회(노회장: 이태춘 장로)로부터 “하마(하나님의 마음) 성경 공부에 대한 판단 요청의 건”이 공문으로 접수되었고,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조사분과위원회에서 조사한 결과 “정은수 집사의 강의와 책을 중심으로 연구분과에서 더 깊이 연구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사료된다”라고 결론지어 연구분과위원회로 이관됨에 따라 연구를 진행하였다.

 

II. 연구 보고

정은수 집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인 “하마성경”의 구독자는 2023년 7월 23일 현재 약 10만 8천 명이다. 정은수 집사의 출판된 저서는 두 권이다. 1) 『하마성경 사무엘서, 열왕기서』 (서울: 세움과 비움, 2021), 이하 『사무엘/열왕기』로 표기. 2) 『하마성경 창세기』, (서울: 규장, 2021), 이하 『창세기』로 표기. 특히 『창세기』는 대표적 기독교 출판사 중의 하나인 규장에서 출판됨으로 책 내용에 대한 신뢰성이 높아지는 효과를 얻고 있다.

 

1. 부정적 영향 정은수 집사는 공적으로 인가 받은 신학대학교 혹은 신학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한 적이 없는 평신도 입장에서 성경을 강의한다. 따라서 정은수 집사의 성경 해석은 그가 깊이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의 신학적 사고와 성경 해석에 크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정은수 집사는 다음의 두 목회자로부터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1) 용인 기쁨의 교회 정의호 목사

 

용인에 있는 기쁨의 교회는 정의호 목사가 담임목사로 있는 교회로, 정은수 집사는 이 교회에 소속되어 기혼남성팀의 팀장 역할을 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정은수 집사는 정의호 목사에 대해 “나의 영적인 아버지”(『사무엘/열왕기』, 11) 로 부르고 있으며, 정의호 목사는 출판된 정은수 집사의 책 두 권 모두를 위한 “추천의 글”을 썼다. 이런 관계를 볼 때 정은수 집사의 성경 강의는 정의호 목사의 신학과 성경 해석, 그리고 목회 강조점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의호 목사의 기쁨의 교회는 대한예수교장로회 합신 소속이었다가 2014년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KAICAM)으로 소속을 옮겼는데, 그 이유 중 하나가 “이단 시비”였다고 알려져 있다. 기존 소속 교단을 탈퇴해서 새로운 단체로 교회의 적을 옮겼다는 것은 교회와 관련된 시비가 사실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음을 방증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2)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

 

정은수 집사는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의 성경 강의에 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정은수 집사는 자신이 노후오 목사 강의 내용을 따르고 있음을 고백하는데 (『창세기』, 111), 유튜브에 올라 있는 동영상 강의에서도 노우호 목사를 여러 번 언급한다. 노우호 목사에 대해서는 이미 제104회기(2019)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의 연구분과에서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에 대한 연구보고서”를 작성하였는데, 이 보고서가 지적한 문제는 다음과 같다.

a. 현대교회 방언은 100% 거짓 방언이요 귀신들의 속임수이다.

b. 율법주의적 세계관의 관점에서 음식물 규례를 이해

c. 요한계시록에 대한 자의적인 해석

d. 이단 옹호성 발언으로 오해를 유발 - 2 - 위의 네 가지 문제에 근거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제104회기(2019)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조사분과위원회의 조사보고서도 지적하듯이, 인지도가 높은 노우호 은퇴목사가 운영하는 에라스하우스의 수강인원이 1만 5천 명에 달해 한국 교계에 미치는 영향이 지대할 뿐 아니라, 에라스하우스에 참여한 교역자들이 교회 내 문제를 일으키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를 감안하여, 노우호 은퇴목사와 그가 운영하는 에스라하우스는 신학적으로 이단성이 있으므로 ‘참여 금지 및 예의주시’로 결의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된다.” 노우호 목사의 성경 본문에 대한 “자의적 해석”의 경향성은 정은수 집사의 성경 해석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

 

2. 두 가지의 전제

 

정은수 집사는 『사무엘/열왕기』에서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과 “하나님 마음으로 성경 읽기”을 대비시키며 한국교회의 성경 읽기는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과 연결하고 자신의 성경 해석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경 읽기”와 연결한다. 이를 위해 그는 두 가지를 전제한다.

 

1) 한국교회는 인본주의에 물들었다. 정은수 집사가 가장 빈번하게 사용하는 단어가 “인본주의”다. 그는 한국교회가 인본주의에 물들었기 때문에 그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 “한국교회 안에는 인본주의, 세속주의, 종교주의가 깊이 들어와 있다. 모든 것이 ‘나’ 중심이다. 하나님의 말씀도 인간의 이성과 경험으로 재단한다....인간의 이성 틀 안에 갇혀서 하나님 말씀을 보니 어떤 능력도 나올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한국교회는 세상에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고 점차 그 힘을 잃어가고 있다.”(9) “인본주의와 세속주의 물결이 교회를 삼키고 있다....오늘 한국교회에 깊이 들어온 인본주의와 세속주의, 종교 주의가 밝히 드러나 회개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11) 이렇게 한국교회를 ‘인본주의에 물든 교회’로 묘사한다. 정은수 집사는 “인본주의는 하나님과 원수 관계다.”(9) “하나님 말씀인 성경은 인본주의 대척점에 있다. 하나님은 인본주의를 너무 싫어하신다.”(10) 라고 주장한다. 이렇게 한국교회를 인본주의와 연결함으로 마치 한국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대척점에 있고,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싫어하시는 것 같은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더 나아가서 아래에서 설명하는 것같이, ‘한국교회는 인본주의에 물들어 인본주의적 해석을 하는 데 반해 정은수 집사 자신은 하나님의 마음, 즉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다.

 

2)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은 금지되어야 한다. 정은수 집사는 성경 통독을 위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인본주의로 성경 통독 금지”다. “성경을 읽을 때 위험한 것은 바로 사람의 이성과 기준으로 해석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성으로 받아들이기 어렵고,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은 인본주의적으로 해석해 버린다.”(14) 라고 설명한다. “인본주의로 성경 통독 금지”는 “내 관점으로 성경 읽기 금지”로 다시 표현된다. “성경을 읽을 때 하는 잘못된 습관은 내 관점으로 항상 읽는 것이다....성경을 읽을 때는 나의 관점, 나의 틀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훈련이 필요하다. 처음부터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러한 훈련을 하게 되면 성경을 읽는 깊이가 달라진다. 성경 읽기는 하나님 마음 읽기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의 유튜브 채널명도 <하마성경>으로 정한 것도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자는 의미이다. 내 관점으로 100번 읽는 것 보다 하나님의 마음과 생각으로 1번 읽는 것이 더 낫다.”(15) 이렇게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읽고 해석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함으로 “내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 것은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이 된다. 마치 기존 한국교회의 성경 읽기는 “내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 것이며 따라서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이고, 자신의 성경 해석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즉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하는 것처럼 설명한다. 정말 정은수 집사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을 수 있는가?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그 어떤 인간도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해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기 위해서는 읽고 이가 하나님이거나, 하나님의 자리에 있어야만 한다. 하지만, 죄인인 인간은 그 누구도 하나님의 자리에 있을 수 없다. 인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허락하신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를 통해 구원받는 존재이며,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하심을 얻는 죄인이다. 인간은 시간적, 공간적 제약 가운데 존재하 - 3 - 며 역사적, 언어적, 사회적, 심리적 한계 가운데서 성경을 읽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 이런 한계와 어려움을 겸허히 인정하며, 성령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가운데 성경을 읽고 해석해야 한다.

 

3. 정은수 집사의 자의적/인본주의적 성경 해석

 

정은수 집사는 “인본주의적 성경 통독 금지”와 “내 관점으로 성경 읽기 금지”를 강조하지만, 정작 자신이 제공하는 많은 성경 해석이 ‘정은수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 “자의적 해석”이며, 따라서 본인이 자주 사용하는 표현인 “인본주의적 해석”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 정은수 집사의 이런 “자의적 해석”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한자를 통한 해석, 시편에 대한 주관적 해석, 관련성이 없는 성경 구절의 임의적 인용, 성령 사역에 대한 몰이해, 가계 저주론 옹호, 그리고 여성 비하적 사고와 언어 사용을 통해 드러난다.

 

1) 한자를 통한 해석

 

정은수 집사는 중국의 한자 단어에 “성경과 관련된 흔적들이 많이 나온다”라고 주장한다. “배 船(선) 자를 파자(破字)하면 배 舟(주)자에 여덟 八(팔)자에 입 口(구)이다. 배에 8명이 타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창세기』, 112~113) 성경에 나오는 노아 홍수 이야기를 중국의 한자를 통해 풀이하는 것은 자의적 해석이다. 또 정은수 집사는 “옳을 義(의) 자도 羊(양) 아래에 나 我(아)이다. 어린양 예수님 아래에 내가 있을 때 내가 의롭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 나를 의롭다고 칭해주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창세기』, 113) 정말 중국의 한자가 성경에서 말씀하는 죄인인 인간이 어떻게 의롭다 하심을 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바울 신학적 선언을 담고 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렇게 해석하려면 중국 한자의 생성과 기독교, 특히 바울 사도와의 긴밀한 연관성에 대한 구체적 증거가 있어야 한다. 정은수 집사는 이런 증거를 가지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중국의 한자를 통해 성경의 가르침을 풀이하는 것은 자의적 해석에 불과하다.

 

2) 시편에 대한 주관적 해석 정은수 집사는 『사무엘/열왕기』에서 사울을 불순종하는 인본주의자의 대표로 취급하고, 다윗을 순종하며 “하나님과 같은 마음”(71)을 가진 자의 대표로 제시한다. 이런 다윗을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유가 시편 78편에 나와 있다고 주장한다. 시편 78:70-72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 하나님은 다윗이 양치는 모습을 보고 자신의 양인 이스라엘을 맡겨도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시편에 나온다. 그런데 그 이유가 마지막 2개 단어에 나온다. 완전함과 능숙함. 완전함은 영어로는 integrity 라고 나온다. 능숙함은 skilfulness 이다. 완전함은 진실되며 사람의 눈을 의식하지 않고 일하는 모습이다. 들판에서는 누가 보지 않는다. 자신이 꾀를 부리거나 대충할 수 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최선을 다해서 자신에게 맡겨진 양을 쳤다. 사자와 곰에게 자신의 양이 물려갈 때도 자신의 능숙한 기술인 물맷돌을 이용해 짐승에게서 양들을 구해냈다는 것이다. 만약 그가 사람 눈을 의식했더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걸고 양들을 구해내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습을 보고 다윗에게 자신의 나라 이스라엘을 맡기기로 결심하신 것이다. 『사무엘/열왕기』, 73~74). 강조는 첨가됨. 정은수 집사는 시편 78편 1~2절, “또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끌어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를 읽고, “하나님은 다윗이 양치는 모습을 보고 - 4 - 자신의 양인 이스라엘을 맡겨도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시편에 나온다”라고 해석한다. 정말 하나님은 다윗이 어떻게 양을 치는가를 살펴보시면서 다윗이 양을 잘 치기 때문에 그를 선택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셨다고 시편 78편의 저자가 말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다윗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기 양을 잘 치는 “완전함”을 보시고, 다윗이 능숙하게 사용하던 물맷돌을 이용해서 양들을 해치려는 사자와 곰을 물리치는 “능숙함”을 보시고 그를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신 것인가? 시편 78편을 쓴 아삽은 이렇게 말하지 않는다. 아삽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양을 치던 목동일 때 선택하여 불러 주셨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 어린 목동 다윗을 하나님께서 불러 주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다윗이 양을 잘 쳤는가 혹은 잘 치지 못했는가 하는 조건은 없다. 하나님은 다윗이 어떻게 양을 치는지를 자세히 살펴보신 후에 그가 양을 잘 먹이고 보호하기 때문에 선택하신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다윗이 목동으로서 이룬 업적이나 성과에 상관없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의 결과로 이루어졌다. 특히 아삽은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라고 말한다. 이것은 다윗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는 완전함으로 양들을 돌보았고, 능숙함으로 양들을 해치는 짐승으로부터 지켰다는 뜻이 아니다. 다윗이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었다는 뜻이다. 완전함과 능숙함은 목동으로서 다윗이 보여주었던 성품과 능력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왕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모습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완전함이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 톰(תֹּם(인데 개역개정판 성경 시편에서는 성실함(시 7:8), 성실(시 25:21) 완전함(시 26:11), 온전한(시 41:12), 그리고 완전한(시 101:2)으로 번역되었다. 다윗이 성실하게, 즉 비난받을 것이 없이 왕으로서의 직무를 잘 감당하였다는 의미다. “능숙함”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타분(תָּובּן(인데, 개역개정판 성경에서는 주로 명철(욥 12:12,13; 잠 2:2,3,6;5:1;8:1; 시 49:3), 총명(출 31:3;35:31;36:1), 슬기(욥 32:11), 지혜(시 136:5;147:5)로 번역되었다. 능숙함은 물매로 사자를 쫓아내는 기술이라기보다는 통찰력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왕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능력을 말한다. 정은수 집사는 하나님께서 다윗이 목동으로서 얼마나 양을 잘 치고 잘 보호하는지를 보셨고, 그것에 ‘합격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 “자신의 양인 이스라엘을 맡겨도 좋겠다는 결정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주장은 시편 78편의 저자인 아삽의 의도를 완전히 왜곡한 것이며, 정은수 집사 자신이 그렇게도 강조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성경을 해석하지 못하고 “내 관점으로” 성경을 읽은 결과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이루어 낸 업적이나 성과를 바탕으로 그 사람을 선택하여 사용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하나님의 부르심과 선택하심은 전적인 사랑과 은혜의 결과다. 이것은 다윗을 선택하여 사용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여 부르시고 사용하실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성경적 원리다. 바울이 로마서에서 강조하는 것도 인간이 율법을 잘 지키는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롬 4:28)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선택은 그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사랑과 은혜의 결과임을 성경은 일관되게 강조한다. 목동으로서의 다윗의 행동과 업적이 하나님께서 그를 선택하신 이유라고 설명하는 것이 주관적이며 자의적인 해석이다.

 

3) 관련성 없는 성경 구절의 임의적 인용

 

정은수 집사는 성경을 풀이하면서 관련성 없는 성경 구절을 임의로 인용해서 사용한다. 창세기를 설명하면서 정은수 집사는 성경 구절을 많이 인용한다. 성경 해석을 위해 관련된 성경을 인용하여 풀이하는 것은 매우 가능하다. 하지만 성경을 인용할 때는 분명한 연관성이 있어야 하며, 인용한 구절도 설명하면서 왜 이 구절이 본문 해석에 필요한가를 이야기해야 한다. 하지만 정은수 집사는 문맥에 맞지 않는 성경을 인용하고, 인용한 성경 구절이 이미 해설하고 있는 성경 본문과 어떻게 연결되는지에 대한 충분한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그의 창세기 해석에서 이런 모습은 반복적으로 발견된다. 하나의 예를 살펴보자. 정은수 집사는 가인에게 주신 경고를 설명하다가 갑자기 사랑과 축복을 설명한다.

 

사랑과 축복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로 행하는 것이다. 마음이 없는데 가식적으로 남을 축복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속는 것이다. 나의 의지를 드려서 미워하는 사람을 축복하면 내면의 미운 감정이 서서히 사라진다. 그러면서 진짜 마음속으로 축복하게 된다. 내 의지를 드리면 감정은 따라가게 된다. 부부 사이도 마찬가지다. 사랑할 수 없는 배우자라도 계속 의지적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표현하면 사랑하는 감정이 생기게 된다. - 5 - 4 우리의 싸우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후 10:4 견고한 진은 하루 이틀 동안 구축되는 것이 아니다. 죄를 품고 그 죄가 오랫동안 형성되었을 때 아주 강한 진지가 된다. 모래성은 손으로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무너진다. 『창세기』, 92~93.

 

사랑의 감정이 없어도 의지적으로 노력하면 그 감정이 생긴다고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고린도 후서 10장 4절을 인용한다. 바울이 이 본문에서 말하려고 하는 것이 사랑의 감정이 없어도 노력하면 그 감정이 생긴다는 것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이 직면하고 있는 영적 전쟁에서 취해야 하는 무기는 육신에 속한 것이 아니라 그 어떤 강력한 진지도 무너뜨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선포한다. 그런데, 어떻게 이 구절은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의지다”라는 것을 설명하는 맥락에서 인용하고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게 성경을 임의로 인용해서 사용하는 것이 자의적 해석이다.

 

4) 성령의 임재와 사역에 대한 몰이해

 

정은수 집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 특히 성령님의 임재와 사역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성령님의 내주를 설명하면서 정은수 집사는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다윗 시대는 성령님이 내주하지 않은 시기였다. 그래서 하나님이 직접 응답하셨다. 지금은 우리 마음 가운데 성령님께서 내주하는 시대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직접 묻고 답하는 어떻게 보면 특별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런데 구약시대의 사람들은 이런 하나님의 영이 모든 신자의 마음 가운데 들어가 있는 그런 사회들을 그런 시대를 너무 고대했다. 요엘 2:28 그 후에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이런 소원함이 드디어 오순절에 오셨다. 성령님께서 직접 우리 믿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 마음 가운데 다 성령님이 찾아오신 것이다. 『사무엘/열왕기』, 88~89. 강조는 첨가됨.

 

정은수 집사는 “다윗 시대는 성령님이 내주하지 않는 시기”였기 때문에 성령 하나님이 아닌 성부 하나님께서 “직접 응답하셨다”라고 주장한다. 이런 설명은 정은수 집사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이해뿐 아니라, 성령 사역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지극히 빈약함을 방증하는 대표적인 예다.

성령님은 성부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던 때부터 함께 활동하셨음을 성경은 분명하게 증언한다. “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여기서 “하나님의 영”은 루아흐 엘로힘(ורּחַ אֱלֹהִםי(으로 성령님을 가리킨다. 성령님은 태초의 창조 사역 때뿐 아니라 다윗 시대에도 분명하게 활동하셨다. 사무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붓는 장면이 등장하는 사무엘상 16장부터 정은수 집사가 말하는 “다윗 시대”라 할 수 있는데, 사무엘상 19장 20절과 23절은 루아흐 엘로힘(ורּחַ אֱלֹהִםי(의 역사를 분명하게 언급한다. 특히 다윗은 자기 입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직접 언급한다. “1. 이는 다윗의 마지막 말이라 이새의 아들 다윗이 말함이여 높이 세워진 자, 야곱의 하나님께로부터 기름 부음 받은 자, 이스라엘의 노래 잘하는 자가 말하노라 2. 여호와의 영이 나를 통하여 말씀하심이여 그의 말씀이 내 혀에 있도다”(사무엘하 23:1~2). 다윗은 여호와의 영(루아흐 야훼, ורּחַ יְוהָה(께서 자신을 통해 말씀하시며, 그 말씀이 자신의 혀에 있다고 고백한다. 다윗의 이런 고백은 다윗 시대에도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께서 분명하게 활동하셨으며, 다윗은 그 성령님의 임재하심과 역사하심을 증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정은수 집사는 다윗 시대를 “성령 부재의 시대”로 설명하고, 요엘 선지자가 성령님의 오심을 예언하였고 그 예언의 - 6 - 성취가 오순절에 이루어졌다고 이해한다. 따라서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 이후부터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것으로 설명한다. 이는 성령님의 임재와 사역에 대한 심각한 왜곡이며 삼위일체 신학에 대한 몰이해에서 나온 위험한 성경 해석이다.

 

5) 가계 저주론 옹호 한때 한국교회에 큰 논란을 일으킨 책이 있다. 메릴린 히키의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서울:베다니 출판사, 1997)이다. 이 책으로 인해 소위 말하는 “가계 저주론” 논쟁이 활발하게 일어났다. 정은수 집사는 이 “가계 저주론” 을 그대로 답습하며 이를 자신의 성경 해석에 적용한다. 다윗 집안 가계도를 살펴보면 그가 왜 여자 문제에 약할 수 밖에 없는지를 유추할 수 있다. 다윗은 유다지파다. 유다가 어떻게 애를 낳는가? 며느리 다말을 통해서 애를 낳게 된다. 그것도 며느리가 창녀로 변장을 해서 시아버지와 관계를 갖고 애를 낳는다. 그리고 족보에 이어서 등장하는 사람은 라합이다. 라합의 직업은 기생이다. 음란한 문화가 판을 치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기생을 하던 사람이었다. 가계에 음란의 저주가 흐르고 있다. 그 피를 타고 흘러 내려오기 때문에 다윗도 이성 문제가 연약했을 것이다. 이것은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이방 여인들과 결혼 문제에 걸려서 우상숭배로 이어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 모두 여자 문제로 넘어진 것이다. 『사무엘/열왕기』, 118. 강조는 첨가됨. “가계 저주론”을 성경 해석에 적용하며 정은수 집사는 다윗이 여자 문제에 약했던 이유를 ‘다윗은 유다 지파였다’라는 사실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면서 유다 지파의 조상인 유다가 어떻게 아기를 낳았는가를 질문한다. 다윗이 속한 지파의 시조인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통해 아기를 낳았음을 언급한다. 특히 며느리가 “창녀로 변장을 해서 시아버지와 관계를 갖고 애기를 낳는다”라고 강조한다. 유다의 며느리가 “창녀로 변장”한 것에 주목하면서, 다윗의 족보에 이름이 올라가 있는 라합이 음란한 지역에서 “기생을 하던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가계에 음란의 저주가 흐르고 있다. 그 피를 타고 흘러 내려오기 때문에 다윗도 이성 문제가 연약했을 것이다”라는 결론에 이른다. 정은수 집사가 이렇게 “가계에 음란한 저주가 흐리고 있다” 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윗이 음란한 죄를 지은 것은 창녀로 변장해서 아버지를 유혹했던 다말과 “음란한 문화가 판을 치고 있던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기생으로 살았던 라합의 피가 흐르는 유다 지파에 속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인가? 다윗의 아들 솔로몬도 아버지를 닮아서 여자 문제로 넘어졌다고 해석한다. 솔로몬 역시 음란의 저주가 흐르는 가계의 피를 받았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고 있는 것인가? 정은수 집사가 성경 해석에 적용하는 “가계 저주론”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한다. 첫째, 조상의 죄와 잘못이 혈통을 통해 후손들에게 흘러간다고 가르친다. 소위 “저주받은 가문” 혹은 “저주받은 혈통”이라는 개념을 만들고 이를 정당화한다. 둘째, 한 개인이 범하는 죄를 조상들의 책임으로 돌리게 만든다. 따라서 자기 행동에 대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셋째, 혈통을 따라 조상으로부터 내려오는 저주가 있으며, 개인의 삶은 그 저주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믿게 만든다. 운명론을 정당화하고 숙명론을 전파하게 된다. 넷째,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입은 다윗과 같은 신실한 믿음의 사람도 가계의 혈통을 따라 흐르는 저주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믿게 만든다. 이는 하나님의 복과 사랑보다 죄의 저주가 더 큰 힘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과 같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저주받으심으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며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아브라함의 축복이 이방인들에게도 흘러가게 하셨다고 선포한다(갈 3:13~14). 가계의 혈통을 따라 흘러가는 저주는 없다. 오직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신 복을 받는 은혜의 복음만이 있을 뿐이다. 정은수 집사가 “가계 저주론”을 옹호할 뿐만 아니라 이를 성경 해석에 적용하는 것은 인본주의적 해석의 결과이며, 성경의 가르침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6) 여성 비하적 사고와 언어 사용 - 7 - 정은수 집사는 여성 비하적 사고를 하며, 이는 그의 성경 해석에 영향을 끼친다. 정은수 집사는 『사무엘/열왕기』에서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 원인에 대해 다음 같이 주장한다. 집안에 어떤 여자가 들어오는지가 중요하다. 북이스라엘이 본격적인 하향곡선의 시발점이 이세벨이 들어오고 나서부터다. 그리고 남유다는 아달랴가 들어오고 나서부터다. 여자가 들어와서 남북 이스라엘을 쑥대밭을 다 만들어버린다. 완전히 집안 자체가 완전히 다 망가져 버린다. 솔로몬 그 지혜로운 왕이 누구 때문에 망했는가? 바로 아내들 때문이다. 이세벨과 아달랴가 남북을 그냥 영적으로 초토화 시킨다. 『사무엘/열왕기』, 196~97. 강조는 첨가됨. 정은수 집사는 북이스라엘 멸망의 시발점을 이세벨이 결혼을 통해 이스라엘로 오게 된 때부터라고 풀이한다. 남유다의 멸망도 이세벨의 딸인 아달랴가 결혼을 통해 남유다로 오게 되면서부터라고 설명한다. 그리고 “여자가 들어와서 남북 이스라엘을 쑥대밭을 다 만들어버린다”라고 주장한다. 지혜의 왕이었던 솔로몬이 망한 것도 “아내들 때문”이라고 해석한다. 솔로몬이 우상을 숭배한 것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가 멸망한 것도 모두 여성들로 인한 것처럼 확대해석한다. 이런 확대해석은 정은수 집사의 여성 비하적 사고방식의 결과다. 여성을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의 원인인 것처럼 해석하는 것은 위에서 살펴본 “가계 저주론”과 맥락을 같이한다. “가계 저주론”에서도 다윗과 솔로몬이 “모두 여자 문제로 넘어진 것”이 창녀로 꾸며 시아버지를 유혹한 다말과 음란한 지역에서 기생으로 살았던 라합과 같은 유다 지파의 여성들과 연관되어 있다고 해석했다. 여기서도 이세벨과 아달랴 두 명의 여성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 모두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린다”라고 주장한다. 정은수 집사의 가계 저주론적 사고는 여성 비하적 성경 해석으로 확대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사무엘/열왕기』 이후에 출판된 『창세기』에는 여성 비하적 사고와 언어 사용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여자들의 경우 외모가 뛰어난 사람일수록 매춘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72) 강조는 첨가됨. “여자들이 일생에 가장 피하고 싶은 고통이 출산의 고통이라고 한다...출산의 고통을 느낄 때마다 하와가 지은 죄를 기억하는 것이 성경적이다.”(86) 강조는 첨가됨. “여자는 남자의 돕는 배필의 역할이라는 특권이 주어졌는데 돕는 배필의 역할을 하지 않을 때는 그 지위를 현저하게 낮춰버리신다. 아내는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위치로 가게 되었다.”(86) 강조는 첨가됨. “부부간에 한쪽이 인간적이고 한쪽이 영적이면 보통 괴로운 것이 아니다. 그럴 때 인간적인 배우자의 말을 들으면 그 부부는 틀림없이 망하게 된다. 사탄도 아담과 하와 중에 인간적인 하와를 통해 그들을 멸망하게 했다.”(164) 강조는 첨가됨. 정은수 집사는 외모가 뛰어난 여성일수록 “매춘이나 유흥업소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고 단언한다. 그렇다면 미스 유니버스와 같은 미인대회 수상자나 슈퍼 모델로 활동하는 여성들은 매춘과 관련된 일을 할 가능성이 더 커진다는 뜻인가? 또 여성들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대단히 소중하고 아름다운 일이다. 그런데, 여성들이 출산의 고통을 겪을 때마다 “하와가 지은 죄를 기억하는 것이 성경적이다”라고 주장한다. 어떻게 이것이 성경적일 수 있는가? 여기서 말하는 “성경적”이라는 표현은 정은수 집사 자신의 왜곡된 여성관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수사적 표현이 아닌가? 인간 타락의 결과로 하나님께서 정말 여성을 “남편의 다스림을 받는 위치로” 보내셨는가? 사탄이 “인간적인 하와를 통해 그들을 멸망하게 했다”고 설명하는데, 이 표현 역시 정은수 집사가 반복적으로 강조하는 생각, 특히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의 멸망에서 여성이 부정적인 역할을 했다고 하는 견해, 즉 ‘여성은 나라 멸망과 같은 부정적 결과의 원인이다’와 맥을 같이하고 있다. 정은수 집사의 여성 비하적 사고와 이를 통한 성경 해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심을 받아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소중하게 쓰임 받는 크리스천 여성들의 정체성과 역할을 왜곡하는 심각한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 8 -

 

III. 연구 결론

 

신학을 전공하지 않은 평신도인 정은수 집사는 십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가진 “하마성경”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경을 강의한다. 그는 용인 기쁨의 교회 정의호 목사와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의 신학과 성경 해석에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된다. 정은수 집사는 한국교회가 “인본주의”의 깊은 영향 아래에서 “인본주의 성경 해석”을 한다고 평가하면서 자신은 “하나님의 마음,” 즉 “하나님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는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정은수 집사의 성경 해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의 관점이 아니라 철저히 자기 자신의 관점으로 성경을 읽고 있으며, 자신이 그렇게도 비판하는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성경과 특별한 연관성이 없는 중국의 한자로 성경을 해석하기도 하고, 시편 말씀을 자기 관점에 따라 해석함으로 그 본래의 의미를 왜곡하고, 관련성이 없는 성경 구절을 임의로 인용한다. 신학을 전공한 적이 없는 정은수 집사는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신학적 이해의 부족으로 성령의 임재와 사역을 심각하게 왜곡하여 해석한다. 신학적으로 큰 문제가 있는 가계 저주론을 옹호하여 이를 성경 해석에 적용함으로 운명론을 기독교의 가르침인 것처럼 전파할 위험을 초래한다. 또한 자신이 가진 여성 비하적 사고를 성경 해석에 적용함으로 생명을 살리고 포로 된 자를 해방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여성의 정체성과 역할을 왜곡하며 여성들을 억압하는 도구로 전락시킬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연구 결과에 근거해서 정은수 집사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하마성경”과 그의 저서를 통한 성경 공부에 대해서는 “참여 자제 및 예의주시”로 결의하는 것이 옳다고 사료된다. IV. 참고 자료 메릴린 히키, 최기운 역, 『가계에 흐르는 저주를 끊어야 산다』. 서울: 베다니출판사, 1997. 정은수, 『하마성경 사무엘서, 열왕기서』. 서울: 세움과 비움, 2021. _____, 『하마성경 창세기』. 서울: 규장, 2021. 총회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 연구분과,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에 대한
연구보고서”, http://new.pck.or.kr/bbs/board.php?bo_table=SM02_18_06&wr_id=149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에 대한 연구보고서 > 자료실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에스라하우스 노우호 목사에 대한 연구보고서I.연구 경위제99회 총회(2014)에서 경기노회 노회장이“에스라성경연구원 노우호 목사에 대한 이단 사이비 여부 등의 정확한 분류 구분을 해 달라는

new.pck.or.kr

출처 : http://new.pck.or.kr/bbs/board.php?bo_table=SM02_18_06&wr_id=164&sca=%EC%9D%B4%EB%8B%A8%EC%82%AC%EC%9D%B4%EB%B9%84+%EC%B4%9D%ED%9A%8C+%EC%A3%BC%EC%9A%94%EA%B2%B0%EC%9D%98#mw_basic

 

하마성경 정은수 집사에 대한 연구보고서(제108회총회) > 자료실 >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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