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45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46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발견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사느니라 47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48 그물에 가득하매 물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느니라 49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50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51 이 모든 것을 깨달았느냐 하시니 대답하되 그러하오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그러므로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마치 새것과 옛것을 그 곳간에서 내오는 집주인과 같으니라 (마 13:44-52)
여호와 하나님 앞에서 항상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이러한 표현을 썼습니다.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그래서 첫 번째 시간에는 어떤 이단은 이 땅이 “신천 신지다” 라고 해서 그 땅에 있는 성도들은 신천지교인이며 지파 안에 들어서 성전을 짓는 그런 교리는 거짓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요한계시록 21장 1절에도 분명하잖아요? 새 하늘과 새 땅은 바다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인데 저희는 언제든지 차로 40분만 가도 서해를 보는데 그 바다의 존재를 신천지는 설명을 못하고 바다를 볼 수 있기 때문에 지금 새 하늘과 새 땅 신천 신지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럼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존재는 무엇인가’ 라고 질문 했을 때 이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의 나라 중에서도 공간적인 개념이라고 했구요. 두 번째 시간에는 ‘보이지 않게 임한 나라’에 대해서 나누었는데요. 그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인데 보이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게 임하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고 심지어는 바리새인들 안에도 있는 나라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이지 않게 임한 하나님의 나라는 새 하늘과 새 땅과 하나님의 나라는 또 다른 개념의 하나님 나라 라고 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 공간적인 개념이라면 하나님의 나라는 영적인 개념인 것이죠.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 않게 임하는 속성이 있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의 나라’ 세 번째 시간으로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 앞에 항상 있는 그 새 하늘과 새 땅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 안에도 있다고 하신 그 하나님의 나라뿐만 아니라 천국이 어떻게 비유되는지를 보려고 합니다. 분명히 그의 나라는 공간적인 개념의 새 하늘과 새 땅 영적인 개념의 하나님의 나라와 의지적으로 소유해야할 나라도 있습니다. 그것을 예수님께서는 천국으로 설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1장 12절에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 분명히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침노 누군가에 의해서 침범을 당하고 그것을 빼앗는 나라라고도 묘사하셨는데요. 그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 임할 하나님의 나라는 의지와는 상관없이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로 존재하는 그의 나라이지만 또한 의지로써 가져야할 나라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특정인에게 특정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이나 교인들에게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비밀이 아니라는 것이죠. 2,000여년 전에 천국 비밀을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원래는 누구한테만 말씀하셨냐면 제자들에게만 말씀하셨는데 그 말씀이 마태복음 13장 11절에 대답하여 이르시되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예수님께서는 원래 천국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따로 불러서 세우신 사도들 제자들에게만 그 살짝 비밀로 하셨던 것인데 그 비밀을 들었던 사람 한 사람이 오늘 읽은 본문의 저자인 마태입니다.
마태는 그 비밀을 혼자만 알고 있기에는 너무나도 놀랍고 좋았기 때문에 기록으로 남겨서 마태복음에 이 천국에 대한 말씀이 자세히 상세히 기록되어 있잖아요? 천국은 그렇게 읽기만 하면 알게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럼 이 말씀은 비밀일까요? 아닐까요? 아니죠. 누구든지 알면 그게 비밀이 아니기 때문에 예수님의 천국 비밀은 처음에는 제자들에게만 허락된 것이었지만 그 비밀이 퍼지고 퍼져서 유대 사람과는 전혀 상관없는 혈통의 사람들인 대한민국 사람들에게까지 알려졌으니까 천국 비밀은 아직 성경을 모르거나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야 비밀인거지 성경을 몇독씩 하고 믿는 사람들에게는 전혀 비밀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그 천국은 분명히 비밀은 아니지만 감춰져있다는 것임을 본문에서 알 수 있게 됩니다. 본문 44절에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며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사느니라” 오늘 읽은 말씀만을 봐도 천국은 비밀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천국은 어떤 속성이 있냐면 ‘발견하고 사야한다’는 것이죠. 천국을 듣고 아는 사람의 의지를 가리키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고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밭보다는 보화에 방점이 찍혀 있는데 그 보화는 감춰져 있지만 발견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는 ‘천국’의 존재를 예수님을 통해서 알게 하셨는데 저희가 그 존재를 믿지만 아직 보고 있지는 못하잖아요? 그런데 놀랍게도 저희는 그것을 듣고 믿어서 그 존재를 알지만 보이지 않으니 저희는 마치 오늘 비유에서 밭을 산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밭에 보화를 발견한 사람은 그 존재를 압니다. 어떤 존재를 아냐면 밭에 감추인 보화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죠. 그 보화를 발견을 했긴 했는데 그 밭을 발견한것만으로 발견한 사람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면 그 밭이 발견한 사람의 것은 아니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죠. 이것은 마치 이런 것입니다.
어르신 두명과 꼬마 한명이 등산을 하다가 내려오는데 빨갛게 뭐가 달린 걸 본거에요. 한 꼬마가 말을 합니다. “어!? 앵두다” 그런데 앵두가 아닌 것입니다. “야! 저거 산삼 꽃이야” 그런데 그게 어디에 있냐면 어떤 밭에 있는거에요. 그래서 그걸 발견한 어르신이 그걸 발견한 꼬마한테 “야! 얼른 저거 가서 캐와야지 저거 산삼이야! 너 산삼이 얼마나 비싼지 알아!?” 말했는데 저 멀리서 또 한명의 어르신 밭주인이 그 이야기를 들은 것입니다. “저 밭 내껀데요!” 그런데 알고 보니까 그 밭에는 산삼뿐만 아니라 온갖 희귀 약초가 잘 자라고 고가에 팔리는 버섯까지 잘 자라는 밭이라면 마침 밭 주인도 그 밭을 팔려고 내놓았다면 그 밭을 어떻게 할까요? 사겠죠.
예수님께서는 천국을 밭에 감추인 보화로 이야기 하셨고 그 밭을 발견한 사람이라면 기뻐하며 돌아간 후에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서 그 밭을 산다고 말씀하셨다는 것만 하더라도 천국은 어떤 속성이 있냐면 감춰져 있지만 발견되는 것입니다. 발견한 사람은 마치 밭에 보화가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밭을 통째로 매입하려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발견한 사람의 의지인 것이죠. 보화를 본 사람은 그 밭 아래 보화가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을 모르는 사람은 흙만 보이기 때문에 밭의 가치를 모르지만 그 밭을 파서 보화를 본 사람은 저 밭이 평범한 밭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 밭을 아예 매입한다는 것입니다. 천국이 이렇다는 것이죠. 천국을 아는 사람은 그 존재를 내것으로 만들기 위해 가만히 있지 않습니다. 어떻게든 발견된 그 천국을 얻기 위해서 내 소유가 전부 든다면 그것마저도 팔아서 그 천국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뭔가 했기 때문에 천국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이해하시면 안됩니다. 천국은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 천국은 그래서 발견되는 것이고 그것을 예수님의 말씀으로 발견한 저와 여러분은 그것을 숨겨 두고 기뻐하면서 사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야 천국이 어딨냐?!”하면서 기뻐하지 못하고 자신의 소유가 천국보다 하등적인 존재인지도 모르고 그것이 전부인냥 그것이 더 좋은 것인것처럼 살아가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천국은 그렇지가 않은 것이죠. 내 소유보다 더 값진 것이고 그것을 발견한다면 누구든지 그것을 사려고 소유까지도 팔만한 가치를 지닌 것이 바로 천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천국을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고 그걸 발견한 사람은 자신의 소유를 천국보다 하등적인 존재로 여기고 그 밭을 산다고 말씀하셨구요.
밭에 감추인 보화의 비유만 보면 분명히 자신의 소유를 팔아서 그 밭을 사는 사람이 천국을 갖게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두 번째 진주 비유를 봐도 천국은 진주 같은 존재가 아니라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다고 기록되어 있구요. 마지막 그물 비유도 천국은 바다 각종 물고기는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 그것이 아니라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바다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바다에 가득하지만 그물에 물고기기가 차게 되고 그중에서는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버리는 그물과 같으니까 지금 예수님께서는 천국의 공간적인 개념을 설명하신 것이기보다는 천국을 알아보는 사람에 대해서 그 사람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감추인 보화와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 비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 비유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의 결론은 천국이 아주 좋은 곳이기 때문에 그 좋은 곳을 무엇인가 팔아서 사야된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 천국을 알게된 사람 그 사람이 정말 그 천국에 합당한 사람인지 아닌지가 천국 앞에서 결정되어 어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버려진다는 것을 말씀하신 비유인 것입니다. 그 천국이 얼마나 좋은데 그것은 누군가에 의해 발견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어떤 사람이 천국에 합당한 사람인가를 말씀하신 본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엔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다는 비유가 마지막 끝으로 갈수록 비유가 아닌 것으로 묘사됩니다. 49절에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리라” 예수님의 천국 비유가 발견한 후에 기뻐하며 밭을 사는 사람의 비유로 시작되어서 끝은 천사들이 의인중에서 악인을 갈라 내어 풀무 불에 던져 넣는 장면으로 마쳐지는 것만 보더라도 지금 천국이 발견되어 그것을 기뻐하는 삶을 살라는 것도 맞지만 천국을 발견해서 기뻐한다 하더라도 그 천국에 합당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천국도 알고 천사도 안다는 것입니다.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보내셔서 천국을 기뻐하고 아는 사람들 중에는 악인이 끼어 있기 때문에 그 악인을 갈라 내신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 비유는 천국을 발견한 사람의 의지에 대한 말씀하신 것이기도 하지만 천국을 알지만 그 사람들 중에 있는 악인을 갈라 내는 천국의 속성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인데 본문 49절과 50절의 말씀은 마태복음 8장 11절부터 12절에서 천국에서 쫓겨날 사람에 대한 것과 비슷합니다. 천국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다 천국에 앉을 것이 아니라 쫓겨날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이 천국 비유는 천국을 발견한 후 그것을 기뻐해서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그 천국을 발견하고 기뻐하는 사람들 중에서 못된 것 악한 사람은 의인 중에서 갈라짐을 당한다는 것을 말씀하시려고 천국을 장사, 그물과 같이 좋은 것을 찾는 어떤 존재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죠. 천국 자체를 어떤 공간적이며 물리적인 것에 한정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천국을 마치 인격처럼 묘사하고 비유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52절 말씀이 더 와닿는 것이죠.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 예수님의 제자된 서기관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천국의 제자’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마다 어떻게 하냐면 새 것 곧 천국과 천국이 알려지기 전 옛것을 다 아는 집주인과 같다고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이 마치 집의 모든 것을 아는 집주인과 같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비유를 읽는 사람들은 천국에 대해서 알고 믿는 존재여서 천국을 기뻐하는 삶을 살텐데 그렇다고 해서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고 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시는 분은 천사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천국의 존재를 수긍하고 발견하고 기뻐하는데 그치지 않고 천국에 들어갈만한 사람으로 여겨지기 위해서는 의인의 삶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천국의 비유는 비유로 시작해서 천국의 서기관인데 ‘제자된 서기관’ 자신의 곳간에서 새것과 옛것을 내오는 집 주인처럼 뭔가 권위있고 무게감있는 존재로 묘사하신 것만 보더라도 천국에 대해서 단순히 듣고 기뻐하는 삶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삶은 집주인과 같은 삶으로써 구별됩니다. 그래서 저희는 “와~! 천국이 있대!”하면서 삶은 말씀을 듣고 잊어버려서 천국에 합당하지 않은 삶이 아니라 “아! 내가 ‘천국에 들어갈만한 사람’으로 여겨지려면 천사도 인정할만한 사람으로 갈라내지지 않는 사람으로 인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가 천국의 그 가치를 알아서 기뻐할 뿐만 아니라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처럼 새것인 천국 복음과 옛것인 율법 모두를 알아서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보이면서 천국의 소중함을 알려주는 천국의 제자된 서기관의 삶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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