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서는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이지만 일상에서는 나중을 위해서 노후대비를 해놓았다면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에요? 아니면 부자청년처럼 전토를 따르는 것이에요? 전토는 ‘들’ ‘시골’, ‘농장’, ‘촌’과 같은 땅인데 부자청년은 그걸 못 버리고 못 파니까 예수님을 따르지 못했던 것이고 근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수 많은 기독교인들도 이 전토에 대해 자유하지 않을텐데 그래서 집사님 권사님 장로님어도 여기에서 자유하지 못하면 그의 나라에 못가는 것은 아니겠지만 나중된 자로 여겨질 수 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믿음은 행함과 항상 함께해야하고 일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믿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믿어왔어도 행함이 뒤따르지 않기도 하고 일평생 믿지 않았어도 믿음과 행함의 간격이 멀지 않은 사람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보시는 인생은 성령 안에 있느냐 성령 밖에 있느냐와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느냐 믿음과 행함이 별개이냐 이것을 정말 세밀하게 현미경을 끼치신 것처럼 보셔서 그 사람에게 합당한 것을 보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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