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상에는 원하던 원치 않던 흑암과 빛의 시간들이 공존합니다. 시간적인 흑암이 어둠이라면 사람이 당하는 흑암이란 고통과 멸시를 뜻하는 단어입니다. 때때로 사람은 그런 시간을 겪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가치가 더욱 빛나기 때문입니다. 가혹하지만 사실입니다.
또한 사람에겐 무거운 짐과 어깨의 통증으로 비견될만한 압제자의 막대기 앞에 놓인 삶을 살아갑니다.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부자에게는 과세라는 막대기가 가난한 삶은 부채라는 막대기가 사람들을 압제하는 것처럼 여겨집니다. 그럴수록 즐거움과 나눔의 가치가 소중한데 그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창성하게 하시고 즐거움을 더하셨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과 흑암 고통, 멸시, 즐거움 모두를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부정과 긍정을 주관하시는 것이지요. 그런 다양한 인간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평강입니다. 정의와 공의입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내 삶에는 어두운 단면이 있어도 하나님의 나라를 굳게 할하나님의 열심이 그 평강을 이루십니다. 그러나 그 진정한 평강이 내 목숨이 다한 이후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 나라의 부적격자가 되지 않으려면 사람의 삶은 늘 평강과 정의와 공의를 지향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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