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는 지금 유대 사회가 상당히 불안정한데 그중에서는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눈에 선하니까 그들 앞에서 ‘긍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그리고 그 긍휼을 실현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대하실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긍휼을 실현한 사람, 실천한 사람은 어떻게 여김을 받냐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긍휼’은 갑자기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도 했다고 앞서 말씀드렸는데 잠언은 이 긍휼에 대해서 잠언 19장 17절에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오늘 읽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비슷한 본문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가 긍휼혀 여기는 것처럼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그의 선행을 갚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갚으시는 것이죠. 보응을 뜻하는 것인데 야고보는 이 긍휼에 대해서 긍휼을 반드시 행해야 한다는 것을 야고보 2장 13절에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라고 기록했을 정도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산에 무리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의 삶에 무엇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까? ‘긍휼’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긍휼을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긍휼 없는 심판’을 그 사람에게 내리시겠다는 것이니 그리스도인으로써 행해야 할 ‘긍휼’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인 것입니다. 심판 받지 않으려면 예수님을 믿을뿐만 아니라 그 말씀대로 행해야만 긍휼히 여겨야만 심판을 이기고 자랑한대요.
그러니까 지금 예수님의 이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저 말씀을 듣는 것으로 ‘아 우리의 조상들이 섬겼던 하나님의 말씀을 저분이 생생히 보여주시는구나 또 들려주시는구나’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그대로 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의 긍휼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때로 저희는 그 말씀을 알면서도 외면합니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걸인이나 내 집 앞에서 분리 수거통을 뒤지는 그 사람들 눈여겨 보거나 돕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순종하지 않는데 긍휼에 대해 인색한데 그리고 저희의 인생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기억되지 않는 그때에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던 모습이 더 많았는데 그렇게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저희의 모습을 바울은 로마서 11장 30절에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께 순종하지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하지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라고 썼을 정도로 순종하지 않아서 긍휼을 입혀주셨고 유대인들이 순종하지 않아서 저희에게 베푸신 그 긍휼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들도 긍휼을 받아야할 존재임을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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