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긍휼이 필요한 사람들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다는 것을 지금 예수님께서 유대에 살고 계실 당시에 누가 있었다는 것이냐면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 할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유대 사회는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와 정말 비슷하다고 말씀을 드렸던 것 같은데요. 가끔 저는 ‘대한민국이 마치 2000여년전 유대 땅과 정말 비슷하구나’를 실감하는데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서 그 시대의 풍경을 말씀하신 장면들이 있잖아요?
마태복음 10장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심을 말씀하실 때 ‘참새’를 언급하신 것이나 ‘들풀’이나 ‘곳간’과 같은 단어를 쓰셨을 때 ‘아 2000여년 전 유대 지역에도 우리가 봤던 ’참새’가 날아다녔고 곳간도 있었구나’ 좀 더 한국적으로 읽힌다는 것입니다. 그런 지역적 풍경뿐만 아니라 사회 구조도 어쩜 그렇게 비슷한지 최고 권력자인 가이사와 총독 개념의 헤롯이나 종교적 영역에서 두곽을 나타냈던 대제사장이나 율법에 능통하면서 비판을 잘하고 상대적으로 목이 꼿꼿한 바리새인들이나 또 어떤 사회 개혁 운동을 하는 열심당원들이나 사마리아 지역 사람과 예루살렘 지역 사람들 갈등은 대한민국은 2000여년전 유대 사회를 고스란히 옮겨 놓은듯한 느낌을 받는다는 것인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긍휼히 여김을 받는 여러 복지혜택이 필요한 소외 계층처럼 그 당시에도 긍휼히 여김을 받아야할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긍휼히 여겨야 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인 ‘긍휼’에 대해서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고 그중에서도 예수님의 말씀은 지금 대한민국 또 내 삶에 적용해도 크게 무리가 없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이고 그 진리이신 예수님의 말씀을 보고 저희의 행할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문에서는 단지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이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신 것이 전부라서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긍휼’이 무엇인가? 긍휼히 여기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할 수 있잖아요? 당시 긍휼에 관한 이야기 중 대표적인 예는 ‘부자와 나사로’입니다. 날마다 호화롭게 즐기던 부자와 나사로라는 한 거지의 이야기인데 나사로는 너무 배고파서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끼니를 해결하려고 하다가 결국 죽어서 천사들에게 들려서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즐기던 부자는 음부로 떨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긍휼히 여겼으면 살았을 나사로는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해 죽은 후에 아브라함과 함께 살았지만 즐기던 부자는 고통 받는 곳에 들어가는 이야기에서 긍휼히 여기지 않은 사람의 최후의 결말을 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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