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누구도 하나님의 참 모습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
그래서 인생은 신자의 삶은 하나님을 믿는 삶은 하나님을 기대하는 삶인데 그 삶은 말씀과 설교로만 듣던 그 하나님을 성경의 인물들처럼 눈으로 직접 목격하는 삶입니다. 아무리 설교를 잘하고 성경에 대한 이해가 풍부해도 그 사람이 하나님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에 대한 혜안이 있을뿐 지혜가 있을뿐이지 눈으로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다 죽어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던 아담과 하와나 노아, 아브라함, 야곱, 솔로몬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나타나셨는데 저희 눈 앞에 있지 않습니다. 연대기적으로 조금 더 가까운 사람인 이사야나 더 앞 시대에 예수님을 목격했던 사람들 모두가 하나님을 어렴풋이 본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 사람들도 성부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이죠. 다만 성령님에 감동하심으로 인해 하나님 없던 인생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임해 그 말씀에 의해 변화된 사람들이 존재하는데 그들도 하나님을 본 것은 아닙니다. 그 사람들은 성령에 의해 믿음을 갖게 된 것이지 눈으로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 4장 12절에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다는 것이구요. 그러나 서로 사랑할 때에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본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지만 마음이 청결한 사람 마음 사고 감각이 지속적으로 더럽혀지는 사람이 마음이 청결해지면 그들이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죄의 역사로부터 죄로부터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만 하나님을 보게 될 날도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팔복 중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사도 요한도 분명히 그 주변에 근처에 있었을텐데 그가 요한일서를 통해 기록한 말씀이 이렇습니다. 요한일서 3장 2절부터 6절 말씀에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고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그가 우리 죄를 없애려고 나타나신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나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나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하나님께서 나타나셨다는거에요 아니에요?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하나님이 예수님께서 다른 이름으로 재림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사도 요한이 살아있을 당시에도 있었기 때문에 이런 편지를 남긴 것이고 그 내용은 지금도 유효한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 재림 예수, 보혜사로 추앙받는 인물들은 이 말씀만 보더라도 다 가짜라는 것을 분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추앙 숭배 받는 존재가 아닌 하나님의 참모습은 어떤 집단에 소속되어 있어서가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누가 본다는 것입니까? 마음이 청결한 자가 본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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